전삼용 요셉 신부 | 성령강림 조건/ 사순 넷째주 수요일/ 2023.03.22

성령 강림의 조건/ 사순 넷째 주 수요일/ 2023.03.22/ 삼용 전요셉 신부
(딸깍 하는 소리):https://www.youtube.com/watch?v=hr4nN2LEObo




금식 넷째 주 수요일 – 성령강림의 조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시고, “아들이 아버지의 하는 일을 보지 않고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뜻하는 자들을 다시 데려오느니라.”
생명을 살리는 능력은 “성령”입니다. 성령은 생명이요 은사요 능력이시다. “아버지께서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아버지께 순종하여 성령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


성령은 능력과 능력과 생명이시며 의와 희락과 평강의 하나님의 나라이십니다. 무엇이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성령은 누구에게 주어졌습니까? 성령을 받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죽을 각오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솔로몬의 계승 장면은 정말 극적입니다. 사실 그의 형 ‘아도니야’는 누가 봐도 왕위를 계승할 자격이 있었다.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알다시피 이 나라는 내 것이니라 그리고 온 이스라엘은 내가 그들의 왕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라가 뒤집어져 네 형의 것이 되었다. 여호와께로부터 받았음이니라”(왕상 2:15). 그리고 그는 아버지인 다윗 왕의 허락 없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합니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온 백성에게 왕으로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나 왕권을 주는 것은 왕이다. 다윗 왕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는 이 모든 것을 다윗 왕에게 알렸고, 다윗 왕은 솔로몬이 그에게 기름을 붓고 그의 나귀에 올라 왕좌에 앉도록 허락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솔로몬은 자신의 왕국을 열망하는 모든 사람을 벌했습니다. 솔로몬은 그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버지의 명령만을 기다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자 어머니 밧세바는 답답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들을 안타깝게 여겨 다윗의 왕권을 아들에게 넘겼습니다. 성령님은 밧세바처럼 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다 주시는 분입니다.


교회 안에도 자리를 잡으려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사제는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 같지만 그는 모든 것을 본다. 그러면 그런 자세로 앉으려고 해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오는 은혜는 가만히 있는 자에게 있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시는 곳을 “제단”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제대’에 대한 존경심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모든 테이블이 퍼져있는 미사를 거행하십시오. 미사 거행에서 성령은 빵과 포도주로 그리스도를 영접합니다. 그러나 성령은 아무데도 강림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죽음을 그리스도의 죽음에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옵니다.
야곱이 벧엘에 있는 반석 위에서 잠이 들었고 그 위에 사닥다리가 내려갔고 천사들이 하늘에서 오르내렸다. 여기서 야곱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하며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에 성령이 강림하시는 곳이 하나님의 집인 벧엘이라는 뜻입니다. 사제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아버지께 순종하고 성령 강림을 위한 장소를 준비하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사제가 없는 미사는 없습니다. 성령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제단도 고려해야 합니다. 제대 없이는 미사가 없다는 것이 정상입니다. 제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요 제물은 나의 죽음입니다.


사도행전 5:32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이라는 표현을 발견합니다. 순종이란 내 뜻을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그 자리에 두는 것입니다. 솔로몬처럼 죽은 사람처럼 잠잠해야 합니다. 내 의지를 걱정하고 걱정하는 우리 모두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결국 성령이 내려오지 않으니 마음이 아프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죽음을 그리스도의 제단에 일치시키자. 성령은 오직 이곳에만 강림하십니다. 그리하면 우리도 성령의 사람이 되어 충만한 기쁨과 힘차게 살게 될 것입니다. 움직이는 제단에서는 미사를 거행할 수 없습니다.